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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5대 희극을 읽어야 하는 이유

셰익스피어 5대 희곡을 번역한 최종철 역자가 그 여정을 공유했다.
BY BAZAAR 2023.07.05
  

Q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좋으실 대로〉 〈십이야〉 〈헛소문에 큰 소동〉. 이 다섯 권의 희곡을 번역하기 위해 정한 공통적인 기준점은 무엇이었나?

A
셰익스피어 희곡은 대사의 절반 이상이 운문이다. 때문에 운문 형식의 대사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느냐가 작품의 깊이를 결정한다. 산문은 주로 희극적인 분위기나 신분이 낮은 인물, 저급한 내용, 편지나 포고령, 또는 정신이상 상태 등을 드러낼 때 쓰이며, 운문은 주로 격식을 갖추어 사상과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기능과 효과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단락을 산문으로 바꾸고 배열하면, “나를 보면 토할 것 같다고 하시니까 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저는 눈물은 절대, 죽어도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가 된다.(웃음) 셰익스피어가 주로 사용한 ‘약강 오보’라는 형식은 모든 운문 형식 중에서 영어의 가장 자연스러운 리듬을 자랑한다. 이 맛을 살리기 위해 음악적 리듬감을 자아내는 우리나라의 ‘삼사조 운율’을 활용했다.

Q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타 장르와 어떻게 다른가?

A
현대적이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서 덴마크 왕자 햄릿의 말과 행동의 기저에는 자신의 신분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독백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대사는 ‘세상의 온갖 수모를 견디면서 사느냐, 혹은 과감히 고해에 대항하여 칼을 들고 싸우다 죽느냐’를 뜻하는데, 두 가지 중에서 그의 선택 기준은 고귀함(nobler), 즉 사회적 지위다. 반면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은 이와 다른 성격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상반되는 행동 양식을 보여준다. 극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보텀이라는 베틀장이며, 하층민인 그는 여왕과 동침을 하기도 한다. 또한 두 청년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우스는 참사랑을 부르짖지만, 한순간에 그것을 배신하고 어두운 숲속에서 퍽의 요술로 쉽사리 사랑의 대상을 바꾼다. 현대 청춘남녀 또한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의해(지금은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설명하지만) 시선을 바꾸며 그것을 운명이라고 둘러대지 않나. 사랑이라는 감정의 근원과 그로 인한 행동 양식은 현대 희극에서 별반 다르지 않게 묘사된다고 생각한다.

Q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우리말로 완벽하게 옮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문에 근접한 번역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A
셰익스피어의 의도에 가장 근접한 단어와 문장으로 이뤄진 본문과 여러 비평가들의 해석과 자료가 방대하게 수록된 ‘아든판 셰익스피어(Arden Shakespeare)’을 참고했다.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구성하는 단어, 문장, 장, 막의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희극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번역 난이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슬픔과 아픔은 시공간과 문화권을 초월하지만 웃음의 코드는 시기와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녀가 서로 이끌린 이유는 시기, 지역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나. 사랑의 성사 과정에서 배우들의 말장난, 즉 언어유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영어와 영어문화권에서 가지는 웃음의 의미를 한국어로 정확히 옮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가진 모든 지식, 경험, 철학, 특히 우리말 실력을 총동원하며 고심하는 과정을 거쳤다.

Q
지난 20여 년간 셰익스피어 연구에 바쳐온 역자로서, 오늘날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문학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즐거움과 효용성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저절로 다음 인물로, 다음 대사로, 다음 장면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도록 구성되었다. 인물이 내뱉는 언어에 매료되어 행동을 주시하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그 행위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들어졌다. 셰익스피어만큼 왜곡 또는 과장 없이 인간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작가는 없다. 더군다나 극적인 상황을 조성하여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에 꼭 맞는 언어를 부여하기 때문에 독자나 관객은 그 추이를 따라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