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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를 위한 책 4

정신에 휴식을 선사할 신간 네 권을 소개합니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의 신작 소설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특별한 방식으로 쓴 책입니다. 작가는 2021년 10월 제주도에서 2023년 6월 창원까지, 여러 서점과 도서관에서 독자를 만나 자신의 소설을 들려주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고쳐나가며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하는군요. 창작된 이야기와 실제 삶의 상호작용 속에서 태어난 이 소설집은 신선한 사유의 경험을 선물합니다.

그다음 며칠 동안, 그는 베란다 의자에 앉아 그 풍경만 바라봤다. 한라산은 보일 때도 있었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한라산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는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았다. 이제 자신 역시 보일 때가 있고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됐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야. 과거는 다 잊어버리자. (…) 어떤 꿈을 가졌었는지는 다 잊어버리자. 대신에 오로지 미래만을 생각하기로 해. 이제까지는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미래가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도록 말이야. – p106, ‘첫 여름’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의 유고작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2022년 7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일본의 문예지 <신초>에 연재한 칼럼을 엮은 책으로, 그가 삶의 마지막 고비에서 되돌아본 인생과 예술, 우정과 사랑, 그리고 음악과 깊은 사유에 관한 기록입니다. 또 특별 부록으로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 글과 일기 일부를 수록해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팬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지금까지 발표해온 다른 오리지널 앨범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이 앨범은 어떤 확고한 콘셉트를 토대로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싱겁게 연주했던 신시사이저와 피아노 음원을 한 장의 앨범에 담았을 뿐,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이처럼 어떠한 계획도 없이 만들어진 날것 그대로의 음악이 더 만족스럽게 느껴집니다. 이것으로 저의 이야기는 일단 마칩니다. Ars longa, vita brevis(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_p355, ‘미래에 남기는 것’


<끝내주는 인생>


2018년 셀프 연재 프로젝트 ‘일간 이슬아’로 데뷔해 어느덧 5년 차 작가이자 이 시대 가장 뜨거운 작가가 된 이슬아의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이 출간되었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드는 시인이자 사진작가 이훤의 사진 산문 1편을 포함해 총 23편의 산문이 실린 이 책에는 태권도장 아이들, 요가원 언니들과 일상의 우정을 쌓고, 개인적인 삶의 불안함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너머 지구의 안위를 헤아리는 이슬아의 여전하고도 단단한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게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삶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는 것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듯이.
_p90~91 ‘나랑 가장 닮은 너를 보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번아웃 탈출을 위한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 책이 제격일 것 같군요. 강렬한 제목이 시선을 끄는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최근 여성 독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는 두 에세이스트 김혼비와 황선우가 1년 동안 서로의 안부를 살피며 교환한 글을 묶은 책입니다. 무례한 세상과 반복되는 일상에 시달리며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번아웃, 그 답답하고 막막한 터널을 서로 토닥이며 지나온 여자들의 유머와 우정이 담겨 있습니다.

친구들은 작년 겨울부터 저에게서 번아웃의 기미를 알아보고 경고했는데도 잘 모른 채 번번이 번-번-번- 타들어가다가 올여름에 ‘아웃’이 되어 나가떨어지고서야 받아들였어요. 번아웃이 맞구나. 사흘이면 끝낼 일을 열흘 걸릴 때부터 이미 그랬구나. 이게 뭐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까요. (…) 번아웃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번아웃이 일 효율을 깡그리 앗아가는 통에 한번 붙든 일이 끝나질 않아 마음 놓고 놀거나 쉴 시간까지 사라지는 게 가장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휴식과 저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다리마저 불태워 없애버리는 게 번아웃이더군요. _p62~63, 김혼비, ‘번-번-번- 타들어가는 날들’